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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교감

“어휘력이 학습의 처음과 끝입니다. 고입⋅대입의 결정체는 어휘력입니다. 그리고 배경지식과 어휘력은 독서량과 비례합니다.” 어느 논술지에서 홍보하던 글이다. 그야말로 어휘력이 모든 수험생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으로 부각시켰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까? 모든 것을 회의하는 자세로 들여다봐도 이 말엔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판단이 앞선다. 그것은 어휘력이 발휘하는 탁월한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분석철학의 거장 비트겐스타인(1889~1951)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했다. 그만큼 언어는 표현, 즉 의사소통의 핵심이기도 하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발전하는 언어사용 능력은 어려서부터 어휘의 습득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아기가 어느 순간 한 마디 언어를 세상에 내어놓을 때 주변 사람들의 환호와 탄성을 기억해 보자. 그 놀라움은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곧 성장과 지적 성숙의 척도다. 그렇기에 배움의 터전인 학교는 어휘력의 증진을 학습의 핵심으로 삼아 교육 효과를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사고력을 확장하는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먼저 어휘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단어의 뜻을 확실히 이해하고, 상황에 알맞은 단어를 선택하여 쓰며, 나아가 창조적인 언어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학습발달을 도모하는 각종 교육 매체에서 어휘력이 학습의 시작과 끝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실례로 어휘력과 관련된 몇 가지 말을 살펴보자. “단어(어휘력)가 아이의 세계를 좌우한다”, “문해력은 많은 어휘를 알아야 한다. 새로운 지식, 다양한 배경지식은 학생들의 풍부한 어휘력에서 나온다.” “학습에 처음과 끝을 정할 수 있는 만큼 기회만 되면 독서와 경험을 통하여 어휘력을 키워야 학교에서의 학습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등등.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휘력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현실에서 가장 쉽게 확인이 가능한 것은 수학능력시험의 국어 영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어휘력과 배경지식을 가지고 빠르게 지문과 문제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특히 최근의 국어 영역은 지문 길이만 반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이니 지문에 포함된 어휘들의 이해와 배경지식은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뿐이랴. 어휘력은 대입 수시전형인 학생부 종합(학종)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바로 자소서 때문이다. 그럼 자소서란 무엇인가? 학생부 기록(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만의 언어, 자신만의 생각을 주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으로 학생부 기록만큼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고입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어휘력은 막대하다. 특목고, 자사고, 외고 등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중학교 성적, 수행평가 활동, 방과후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수상 실적, 기타 세부 특기 사항, 종합의견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언어와 생각으로 자소서를 작성하는 것이 진학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결국 대입, 고입 및 학력에서 어휘력을 빼고서는 어느 것 하나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쓰는 어휘는 실망과 절망에 가깝다. 남녀를 막론하고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또한 국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단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속어, 비어 등은 물론이고 지나친 축약어를 보라. 이는 본래 어휘의 의미와 뉘앙스를 잃고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개중에 독서를 생활화한 학생, 토의·토론을 즐기는 학생, 발표 수업에 적극적인 학생, 글쓰기를 습관화하는 학생, 문예활동을 즐기는 학생 등은 상당한 어휘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펼치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주인공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게 어휘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은 결국 사고(思考)의 확장뿐만 아니라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