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제물포고등학교 교감
무신분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고전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자의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신뢰는 현대에 와서도 굳건한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하면서 그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전국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여론조사 2013’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를 전반적으로 평가하니 100점 만점에 49.8점(5점 만점에 2.90점)을 얻어 낙제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또한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에선 고등학생들의 55.9%가 원격수업에 불만을 드러냈다. 학교가 이렇게 교육소비자(학생, 부모)의 신뢰를 잃어 무능하고 무성의한 것으로 인식이 된다면 그야말로 교육이 설 자리가 없는 것 아닌가? 이는 겉만 화려한 우리 교육이 '빛 좋은 개살구'란 증거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위상을 바로 잡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우선 먼저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정확히 보자.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만 실상은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교육 살리기에 저마다 아우성이다. 사교육은 2019년 연간 21조 5000억 원을 넘어섰다, 이미 사교육 공화국이라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교육 망국론이 나온 지 한두 해가 아니다. 학교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국민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빚을 내어 자녀를 학원과 과외로 내몬다. 그러니 오붓한 가정의 행복도 먼 나라 이야기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 국민이 원하는 학교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기도 하다. 그것은 학교 교육이 추구해야 할 당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바로 수업과 인성교육 강화, 학교폭력 예방 등이 그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학교 교육이 가장 신뢰를 잃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학교 교육은 절차탁마의 자세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수업내용과 방법의 획기적인 개선이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쓸모없는 지식인 것은 학교와 사회가 유리되고 학습과 삶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직접 잡아 친절하게 입에 넣어주는 주입식 교육으로 이런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조차도 남에게 의지하며 사는 '기생충' 인간을 배출하게 된다. 온라인 MOOC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둘째,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역주행 가치관은 심각하다. 어느 조사에서 “10억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 생활도 감수하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초12%, 중28%, 고44%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코로나 따위는 개나 줘라”하고 또 WHO의 “젊은이, 코로나19에 천하무적 아니다”는 경고도 소귀에 경읽기다. 이처럼 청소년의 공동체의식 부재는 학교와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의 결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셋째,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해야 한다. 날로 다양해지고 심화되는 학교폭력을 위해서는 처벌보다는 회복적 생활지도로 그 초점이 ’관계회복‘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결국 학교가 주도하고 교육공동체가 함께 참여하여 배전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 좋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꿈과 행복을 학부모들에게 믿음과 만족을 교직원들에게 보람과 긍지를 심어준다. 공교육 살리기는 국가 차원의 교육시스템의 혁신과 학교 차원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금보다 훨씬 좋은 교육이 실행되어 학생, 학부모, 교사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코로나19의 위기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당장 기대하는 건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교육의 질을 지켜내는 ‘가르치는 자’의 지혜와 열정, 땀방울이다. 이것이 '무신불립'으로 이어지는 신뢰받는 학교 만들기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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