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세원고등학교 교감
“인간은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란 한 철학자만의 생각으로 그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상호의존 해야만 성장하고 나아가 생존할 수 있다는 모든 인류의 무의식적인 공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가 지향하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 ‘협력’, ‘공생’, ‘공존’은 표면상 문자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인류 의식의 저변에 축적된 강력한 교육의 메시지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우리의 경쟁교육은 ‘무위자연’의 노자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계몽주의자 루소의 말에 대한 역행이자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사회를 거스르는 부자연의 극치다. 이에 필자는 함께 배우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제언하고자 한다.
2012년, OECD PISA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1위, 독해 2위, 과학 4위라는 높은 성취를 보였다. 하지만 ‘협력적 학습’ 선호도 조사에서는 꼴찌를 기록했다. 이를 반영하듯 오늘날 대학에서도 팀별 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 모두가 불만이라고 교수들은 이구동성이다. 왜 그럴까? 학생들 대다수가 무임승차하는 팀원이나 관계가 좋지 않은 동료 때문에 자신만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에 대한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당연한 결과다. 왜냐면 우리의 초·중등교육은 협력적 문제해결 능력과 협업의 기본 태도를 가르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별 결과 위주로만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은 동료란 함께 협력해 문제를 풀어갈 파트너가 아니라, 성적을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생존경쟁의 상대로 간주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와는 반대로 사실 천재, 영웅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협업(collaboration)의 전문가였다. 토마스 에디슨의 수많은 발명품은 실험실에 혼자 틀어박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연구실에서 70여 명의 전문가와 조수를 고용해 협업한 결과였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비글호와 갈라파고스에서의 관찰을 바탕으로 수년에 걸쳐 연구진과 협업하고 동료들과 토론을 거친 결과였다. 우리의 경우도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의 강진 유배생활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주옥같은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런 경이로운 집필 배경에는 저작의 상당부분이 그가 가르친 24명의 제자들과 공동 작업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효율적인 협업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협업은 학교 교육의 학업 성취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다양한 학습법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탁월한 방법은 바로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또래 간 모둠학습이다. 이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의 학습방법에 따른 효과 분석에서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책이나 강의를 통한 학습은 10~20%를 기억하고,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면 50%, 해당 내용을 주제로 토론을 하면 70%를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친구)에게 가르치면 효과가 거의 9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구를 가르치려면 먼저 배운 내용을 스스로 분석해 중요한 것 위주로 요약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작용해서 모르는 친구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학습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시간낭비가 아닌 효율적인 협업이 아닌가?
우리의 교육에게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협력해야 할 파트너여야 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 불리는 도구적 인간은 일부 영역에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과 협력의 파트너가 돼야 한다. 그래서 미래는 컴퓨터와 가장 잘 협력할 줄 아는 인간만이 직관과 통찰력을 적절히 구사할 것이다. 이는 공감을 필수로 하는 소통과 협업 능력을 갖춘 인간만이 디지털 사회에 적응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교육은 바로 이렇게 인간과 도구가 협력하여 배우는 과정임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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