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중세 시대를 지배한 신학적 지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성경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세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를 변함없이 인정하고 유념하면서도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풀고자 했다. 이것이 유럽에서의 대학의 탄생 배경이다.
중세의 대학은 기존의 학교들이 지식과 의식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하자 여기저기서 설립되기 시작했다. 중세 이후에 설립된 대학의 모토(motto)에는 ‘쉬엔티아(scientia 학문, 앎)’, ‘베리타스(veritas 진리)’, ‘사피엔티아(sapientia 지혜)’, ‘룩스(lux 빛)’라는 말을 대학의 표제어로 사용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대학들, 예컨대 하버드대는 ‘진리(veritas)’, 예일대는 ‘빛과 진리(Lux et veritas)’,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 서강대는 ‘진리에 복종하라(Obedire veritas)’를 표방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기관 특히, 지성의 상징인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전당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성경(요한복음 8,32)에 나오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진리(眞理 truth)란 무엇인가? 진리 즉, ‘베리타스’는 ‘참되고 진실한’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 ‘베루스(verus)’에서 ‘참, 사실, 진실, 진리’를 의미하는 ‘베리타스’가 파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진리’라는 표현이 태생적으로 중세의 그리스도교적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종교와 관련된 표현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를 대할 때의 태도이다. 우리는 진리가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결코 외부의 힘에 의해서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외부의 힘의 상징인 종교와 진리의 전당에서 행하는 교육의 본질적인 차이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종교와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종교가 마치 정원(garden)과 같다면 교육은 자연(nature)과 같다. 종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정원이다. 여기에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종교’라는 아주 큰 정원과 각각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종(種)과 수(數)가 다른 식물들이 어떤 제한된 범위에서 자라고 있다. 문제는 취향과 생각이 제각각인 식물은 동일한 정원에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작은 정원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식물들만이 공존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원만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더 큰 정원, 나아가 자연이라는 더 큰 세상에 살고 있다.
정원과 달리 자연에는 잡풀과 잡목이 따로 없다. 다 제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구성원이다. 정원 안에서 각각의 생각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에 불과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잡풀, 잡목인 것이 없다. 제각각의 정원들은 자기들만이 옳다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것, ‘틀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다. 그런 자연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비로소 진리는 진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우리 교육은 끼리끼리 같은 종류의 식물만이 존재하는 정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다양한 식물들이 제각각 개성 있는 모습으로 공존하는 자연이 되어야 한다.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소통, 나눔, 배려, 협력이 함께 하는 교류는 활력과 생명력이 넘치게 한다. 지금 우리의 학교는 다름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문화를 권장하고 장려해야 한다. 진리는 동종교배로 이루어지는 편협한 사상으로는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교육에서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는 이유다. 우리는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 외친다. 학교는 정원이 아닌 자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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