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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온통 논밭 천지인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의 시골마을. 부락 대신 공단시설이 듬성듬성 들어선 이곳에 위치한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기적성 방과후학교 활동이 무상으로 이뤄진다. 산업체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고, 재능기부를 통한 무상교육을 펼치고 있는 안성대덕초등학교(교장 이호원, 사진). 학생들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참된 의무교육이라고 강조하는 이호원 교장의 교육론을 들어봤다.

대덕초는 여느 시골학교와는 환경이 또 다릅니다.
“학교 주변에 그 흔한 가정집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부락이 없고 대신 공장이나 산업체가 들어서있습니다. 2차선 도로가 학교 앞까지 뻗어있지만 학교 앞을 지나는 버스가 한 대도 없어서 학생들이 걸어 다녔어요. 다행이 지난해부터 안성시의 지원을 받아 스쿨버스가 운행돼 학생들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처음 왔을 때 학교가 삭막하고 학생들의 활동도 저조했어요. 학생들의 꿈도 소박합니다. 요리사, 간호사, 회사원, 경찰관, 과학자, 교사를 꿈꿔요. 더 큰 꿈을 키워주려면 교육청에서 지원받는 예산으로는 양질의 교육활동을 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재능기부를 생각했습니다.”

산학협력 맺은 업체는 어떤 곳인가요?
“학교와 산학협력을 맺은 주식회사 코미코(대표이사 전선규)는 IT 관련 반도체 기업입니다. 중국과 미국에 공장을 둔 업체로 사원들이 중국어나 영어, 컴퓨터 등 재능이 풍부해서 시골학교 학생들의 강사가 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실 어떤 사업체로 접촉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코미코 대표이사가 회사를 창업할 때 사원이 100명이 되기 전에 자신을 사장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표이사의 마인드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역시 대표이사의 마인드가 다르더군요. 설득을 거듭해서 2007년 9월 부임한 한 달 후 산학협력을 체결했습니다. 5년째 7명의 사원이 매일 오전 8시 20분부터 9시까지 중국어와 컴퓨터 강사로 봉사하는데, 회사에서는 자원하는 사원에게 인센티브를 적용해서 봉사활동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대덕초 재능기부를 위한 전담팀을 만들어서 관리해주고 있어요.”

외부인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원의 신변문제는 걱정을 안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 것보다 좋은 것 없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사원을 강사로 보낼 때 이미 검증을 했을 것이라 믿었고, 입사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검증이 됐을 테니까요. 이런 걸 할 때는 모든 걸 계산하면 이뤄지지 않아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 새로움이 시작됩니다.”

재능기부가 무상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우리는 사업체와 산학협력을 맺을 때 ‘순수한 재능기부’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물질 지원이 아니라 사원들의 재능을 학교에 기부해 달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어요. 다만, 학교에 돈이 없으니 재능기부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업체에서 부담해달라고 요구했죠. 그러다가 컴퓨터 교육 하러 온 사원들이 아직도 브라운관 모니터를 쓰는 걸 봤는지 다음날 LCD모니터 수십 대가 지원되더군요. 이게 시작이 돼서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위해 예산이 지원됐고, 덕분에 86개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무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올해 코미코가 학교에 지원한 순수 교육활동비는 3억 원입니다. 코미코는 기업의 이익을 대덕초라는 사회에 환원하는 업체라는 평가를 받게 됐어요.”

재능기부는 학생들의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일단 학생들의 재능이 크게 늘었어요.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아침마다 줄넘기음악을 한 덕분에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했어요. 방과후교실과 돌봄교실, 체험학습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만족도가 아주 높아졌습니다. 얼마 전 조사를 하니 만족도 97.1% 라는 경이적인 기록이 나오더군요.”

체험학습을 위해 교사들이 섭외에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학사일정 중에 4번의 ‘호연지기’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종의 체험학습입니다. 봄에는 우리고장을 탐방하고, 여름에서는 수영장을 가고, 가을에는 시내 밖으로 체험가고, 겨울에는 서울에 가서 과학관이나 빙상장을 가고 농구경기를 관람합니다. 삼성구단에 직접 요청해서 시골학교 학생들이 직접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표를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매년 160장의 표를 지원받아요.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위해 기관과 구두로 협약을 맺어서 프로그램을 지원받아요. 참 애를 많이 씁니다. 학교는 사업체와 지자체, 각 기관으로부터 받은 만큼 우리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의무로 지정하고, 학생들을 졸업시킵니다.”

학교와 산업체의 산학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돈만 가지고 산학협력을 맺으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재능기부를 기본으로 뒀기 때문에 사장단을 넘어서 사원과 학교 간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사원들이 학교에 자주 방문하고 학생들을 알아가게 되면 학교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저절로 파악하게 돼요.”

앞으로 대덕초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공모교장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오는 2015년 8월까지 대덕초에서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된 교육활동이 앞으로 쭉 유지되는 게 최대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고, 교직생활 대부분을 안성에서 해봤기 때문에 시골학교 학생들을 잘 압니다. 시골학교와 도시학교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대한민국 교육계와 공유하는 게 소망이에요. 대덕초에서 시작된 재능기부를 통한 무상교육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지난해 12월 안성시 소규모 20개 초등학교가 24개의 산업체와 합동 결연식을 맺었는데, 아주 의미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대한민국 교육계 곳곳에 퍼져서 학교 교육이 건강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