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육과 창의적 체험활동
임유원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교육연구사)
1.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추구하는 진로교육
교육의 목적은 자아 발견을 통하여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발전시키고 사회 속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자아실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교육내용은 진로교육의 목적 및 내용으로 그대로 진술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진로교육은 학생들이 삶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교육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구체화된 교육적 실천이다. 따라서 진로교육은 삶의 자립역량을 기르고자 하는 모든 교육활동에서 일종의 메타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정연순, 2010).
오늘날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역량을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라고 정리하여 말한다. 여기서 창의성과 인성의 관계는 포괄성, 종합성, 미래지향성, 개방성, 동시성 등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쉽게 표현하여 말하자면 창의성을 사회 속에서 의미 있게 발현시킬 수 있는 바탕적 역량을 인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오늘날 글로벌 인재가 갖추어야 할 창의성은 소수의 영재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개별적 능력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삶의 현장에 대처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함께 미래사회를 창조해가는 사회적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창의성과 인성이 융합된 역량을 미래인재의 핵심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진로교육의 목적으로서 변화하는 미래에 대처하며 자립적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역량의 함양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의 진로교육을 돌이켜보면, 교과목으로서의 ‘진로와 직업’교육은 진로교육에 관한 형식적이고 지식체계적인 박제화된 교육 내용의 전달이나 일방적인 정보 제공에 불과하였고,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진학지도나 직업선택을 위한 수단적 교육 역할로서 운영되어온 측면이 있다. 진학지도로서의 진로교육을 통해 적성에 따른 진로 선택이 아니라 성적에 따른 진로 결정으로서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의욕을 잃고 성적이 곧 적성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직업선택의 사전 단계로서 자기이해를 위한 심리검사를 실시하지만, 이러한 심리 검사 결과가 단순한 도식적 유형적 분류에 그치고, 개별적이고 심층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육청의 진로교육 활성화 지침에 따라 학교에서 특별활동이나 재량활동 시간에 또는 특별 행사로서 진로의 날이나 진로 주간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은 주로 다음과 같다. 미래의 꿈 글짓기나 포스터 그리기 또는 나의 꿈 발표대회, 진로정보탐색 경진대회, 가족과 함께 하는 직장 체험, 진로 희망학교 탐방, 명사 초청 강연회 등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교육활동이라기 보다는 일회성, 전시성 행사에 불과하여 학생의 개별적이고 내면적인 진로의식의 성숙에 미치는 영향이 빈약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학교 밖에서 실시하는 직장 탐방, 직업체험 활동은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서 즉시적이고 표면적인 성과가 쉽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일시에 방문하여 강사의 일방적인 설명을 들으며 지나치는 형태로 운영되어 수박 겉핥기식 피상적 체험활동에 그치고 마는 위험성이 있다.
학교 진로교육을 논하는 많은 자리에서 교과와 연계한 진로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모두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 내용상의 연계, 또는 교과와 관련된 직업 분야의 소개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 내용에서든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대처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내면의 흔적으로 남는 체험활동이 중요하다. 비교과 영역의 교육과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말을 일반명사로 사용했을 때, 바로 ‘창의적인 체험활동’은 먼저 교과 수업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활동 중심의 교수ㆍ학습은 진로교육과 연계되는 성격의 교육활동이 될 수 있다.
체험활동은 일정 기간에 걸쳐 집중적이며 질적으로 풍성한 활동을 통해 이루어질 때 학생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며 진로의식의 성숙을 꾀할 수 있다. 따라서 ‘진로’라는 단어를 내세우는 형태로 표면화된 교육과정으로서의 진로교육보다는, 진로의식의 성숙을 위한 잠재된 교육과정으로서의 진로교육 문화가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교과 내용과의 연계는 물론, 동아리활동과 봉사활동, 또는 자율활동과 학교의 특색활동 등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역량을 발휘하며 지속적인 성취를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인 체험활동을 모색할 때, 학교의 진로교육은 풍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의 진로교육 활동은 학생들에게 교과 지식뿐 아니라 현재의 자기 생활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여, 지역사회의 삶의 현장에 대한 참여를 통해 자기 역할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와 비교과 활동에서 다양한 범교과학습 주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재의 구체적인 삶과 연관된 체험활동 기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삶의 현장과 연관된 창의적인 체험활동을 통해 신명나는 설레임에서 우러나는 자발성과 역동성을 학생들에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긍정적인 자아존중감과 함께 미래의 삶에 대처하는 진로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진로교육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대와 우려
학교 진로교육 담당교사의 진로교육 역량 강화를 위해서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증제를 도입하였고, 올해부터 관련 법령 개정과 함께 부전공 연수(40학점)를 통해서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배출하여 순차적으로 전국의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1명씩 배치 운영하기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역할을 보면 진로와 직업 교과 수업 또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진로활동 수업을 맡도록 되어 있으며, 진로진학상담부장으로서 학교의 진로 ․ 진학 교육 업무를 총괄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업무는 한 명의 교사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에 이미 배치된 (전문)상담교사가 하는 인성교육 업무와 별개로 운영하더라도, 진로 및 진학 상담은 개별적인 맞춤형 컨설팅 교육이 되어야 하므로 담임교사의 역할을 요구하는 수준이 된다. 또한 진학지도에 있어서도 3학년 진학 담당교사들도 방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개별적인 지도 방안을 충분히 수립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므로, 명칭에 걸맞게 실질적으로 진로진학 상담의 업무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진로진학상담교사는 학교의 진로교육을 전담하는 개별 부서의 업무 분장으로 인식되거나 진로교육 교과 담당교사로 인식되어, 다른 교사들은 진로교육의 책무성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또한 ‘진로와 직업’ 교과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의 진로활동은 구체적인 교과적 수업 목표와 엄격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수업이다 보니, 담당교사의 부담감과 책임감도 적어지게 되기 쉬우며, 반대로 진로교육에 의욕과 열정을 가진 교사라 할지라도 혼자서 너무 열심히 다양한 진로교육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 다른 교사들에게 부담과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게 될 수도 있다.
이제 중ㆍ고등학교의 교사들은 분절적인 교과의 장벽에 갇혀 있지 말고, 함께 하는 교육활동에 대한 개방적인 동료성을 기반으로 학교 교육과정 운영 조직의 협력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장의 경영 혁신, 학교문화 혁신을 통해 정보의 공유와 개방, 참여와 협업에 의한 자가 발전의 시스템을 학교에 자리잡히게 해야 한다. 학교의 진로교육에 대한 교육문화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며, 그러한 교육과정 운영의 바탕에 창의적 체험활동이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진로교육은 지정된 업무 담당자에 의해 진로와 진학, 직업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방향적인 교육이 아니라,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순환적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진로교육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진로교육 교육과정은 주로 개인의 심리적 발달 모델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회 변화가 현재 청소년들의 생활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고려가 부족하다. 변화하는 직업세계 못지않게 변화하는 청소년의 삶에 대한 연구와 체험 중심의 교육활동이 필요하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학교 현장의 창의인재 양성과 진로교육과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제도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학교 성적 이외에 개인의 진로에 대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과 경험 등이 학교생활을 통하여 어떻게 실천되고 성숙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개인의 진로 잠재력과 가능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제도이다. 아직까지 학부모와 교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은 입학사정관제 정착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추진 방침과 함께 중ㆍ고등학교에서의 책임 있는 교육활동 운영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3.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창의적 체험활동은 우리 교육이 새롭게 ‘글로벌 창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시급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도입되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교과 영역과 더불어 창의 인성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적 교육활동으로서 그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도입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은 교육의 목표와 방법, 그리고 활동 주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무엇보다도 단위학교의 자율적이고 특색 있는 교육과정 편성 운영을 위한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으며, 향후 2~3년 후에 학교 교육과정의 차별화, 특성화를 통한 학교 간 격차가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가장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 강화, 둘째-창의성과 인성의 함양 강조, 셋째-지역사회와 협력하는 지역단위의 교육과정, 넷째-학생 중심의 체험활동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빠뜨리지 않고 지적하고 싶은 핵심적 성격으로서,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성에 바탕을 둔 집단활동’이라는 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이 사교육을 통해서 보완될 수 없는, 학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학교에서의 고유한 교육활동으로서의 성격과 중요성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을 통틀어, 또한 교과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인 체험활동까지를 포함하여 ‘자율적인 집단활동’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글로벌 인재의 핵심역량으로서 창의성과 인성은 학생 개인적인 두뇌활동을 통해서 함양되는 지식 획득의 과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여건과 방식, 다른 과정에 기반을 둔다.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매개로 하여 문제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가는 집단활동의 과정이 필요하다. 능력과 적성이 다르고, 흥미과 관심, 성격이 다양한 학생들의 집단활동 속에서 서로를 인내하고 배려하며,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개방과 공유, 협업의 정신을 연마하면서 함께 이루어 내는 과제 해결의 과정 속에서 진정한 창의성과 인성을 함양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에듀팟(edupot)에는 그러한 체험의 과정 속에서 개별적인 교육적 성취가 학생의 내면적 성장의 기록으로 누적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학교는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질적으로 풍성한 체험과 성숙이 가능한 특성화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것은 창의적 체험활동이 어떤 사교육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학교만의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입학사정관들은 학생이 주어진 교육환경에서 자신의 능력 함양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활동을 중요시하여 평가하게 된다. 기존의 대입전형 방식이 성적으로 나타난 학습의 결과를 주로 보았다면, 입학사정관제에서는 학습과정, 교육여건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고, 그것이 공교육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 글은 지난 2011년 3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주관한 「변화된 교육 환경, 변화하는 진로교육 : 실천사례를 통해 본 진로교육의 과제와 전망」에서 발표된 글을 저자의 허락 하에 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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