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코로나 상황 가운데 돌봄과 소외, 교육격차와 기초학력,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등 교육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체감하며, 오늘날의 학교 현장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보다 실질적으로 느낀 점과 실천해야 할 부분을 교육활동 실행과 연관시켰을 때 교육과정 운영에 관련된 정책과 시스템 개선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5가지 주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1. 교육과정에 대한 유연한 매뉴얼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교육적 백신’입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처음 겪어보는 낯선 상황으로 인해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2주 단위(코로나의 잠복기가 2주이기 때문에 2주로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로 내려오는 교육부의 발표에 따라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 단위 학교는 저마다 해석을 달리하며 학교 현장에 큰 혼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당연히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지침도 문제였지만 학교 구성원의 결정과 책임 문제에 따른 미숙한 대응은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혼선을 가중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지침과 결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상황 대응 매뉴얼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그 매뉴얼의 핵심은 학생을 중심에 둔 최선의 교육활동을 위한 매뉴얼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전문가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더욱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지침 마련, 즉 결정과 실행에 대한 자율 그리고 책임에 대한 보호는 교육 실행의 방해 요인을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는 백신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본질은 ‘배움’입니다.
최근 에듀테크, 온라인 수업을 강조하는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낡은 교육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교육이 등장할 것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도 사용하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려 2020년 코로나 상황이 이러한 변화들의 의도를 보기 좋게 뒷받침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육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교사가 성찰해야 할 부분은 분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교사 자신의 교육적 준비 역량입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개학 연기, 온라인 수업에 대한 시도에서 늦은 지침과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없는 환경 등에 대해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러한 교육에 대한 담론들이 충분히 진행되었습니다. 나만의 수업 콘텐츠를 만들고 학생과의 소통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학생이 진정 원하는 수업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준비하고 있었던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는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적극적으로 극복해보고자 노력 하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도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영향으로 개별화 맞춤 학습이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회성 온라인 수업이 아닌 미래교육의 흐름을 읽고 개별화 수업과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교육과정-수업-평가, 즉 교육적 본질에 대한 부분입니다.
개학 연기와 재택근무, 업무 및 행사의 유보 및 잠정적 취소 등 업무보다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물론 방역과 온라인 수업 등 낯선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도 주어졌지만, 한 시간 온라인 수업을 위해 3~4시간, 5~6시간 동안 수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교육이 추구하고자 했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업무 경감이라는 선결 과제가 주어지긴 하겠지만 이러한 열정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수업은 ‘방법과 수단’일 뿐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교사와 학생이 수업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학생의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교사는 교육과정의 문해력을 키우고 미래 교육의 지향점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3.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는 ‘전문적 학습공동체’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위 2번에서 언급했던 대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리터러시는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학생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역량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온라인 학습환경 구축과 그 활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적인 인력이나 장비 등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교사 간 디지털 리터러시의 격차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문 학원이나 영상 전문가처럼 화려한 수업 촬영은 어렵겠지만 이러한 역량 차이로 인한 수업의 차이는 결국 학생의 참여도와 학업 격차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퀄리티 높은 수업 촬영이나 콘텐츠 개발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수업도 중요하겠지만 학생의 개별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하여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수업 방법(실시간 쌍방향, 콘텐츠 활용, 과제 수행형)을 선택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역 내, 학교 내, 공통교과 간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활성화 시키는 것은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수업 시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학생의 특성과 교육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들을 공유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한다면 ‘화려함’보다는 ‘확실함’이 있는 수업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또한 동일한 교육적 경험을 하고 있는 전문적 역량을 갖춘 교사와의 연수나 연구 활동을 통한 교사 디지털 리터러시 평준화 노력은 새로운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교육과정을 실행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4. 경쟁보다는 ‘협력과 공존’의 가치가 있는 학교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학교의 이미지는 공존과 협력보다는 경쟁이 더욱 익숙하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상대평가와 줄 세우기,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 하에서 경쟁은 어쩌면 필연적인 생존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과 별개로 생존을 위한 협력과 공존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력과 공존은 단순히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함께 지켜주고 협력해주는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공존과 협력의 가치가 잘 발휘된 나라가 방역에 성공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과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해보면 창의적 체험활동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영역과 주제는 너무 형식적이며 구체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실제적인 상황을 경험한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선정, 행동에 대한 책임 및 예방과 대책에 대한 실행 방법과 관련한 주제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통해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통해 사회의 발전과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고 그러한 가치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활동이 가능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과 활동에서도 공감과 협력의 가치를 이해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기르고, 공존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와 활동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5. 교육과정의 중심에는 ‘학생’이 존재해야 합니다.
교육활동에서 학생은 중심에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는 가운데 학생의 등교와 수업 방법 등 학교의 운영과 결정에 학생들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정해진 지침에 의해서 등교 인원을 정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였습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자질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서 교육활동의 결정 과정에서 교육 3주체 중 하나인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과정에서 학생과 의사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등교 희망 여부나 교과서 배부 방법 등에 대한 형식적 설문보다 위기 상황에서 학교 교육과정을 어떻게 편성, 운영되었으면 좋을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묻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과 위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주고 협력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위기 상황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 활동에 학생을 당연히 참여시기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맺으면서, 2020의 우리가 겪은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90일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를 오가며 교사와 학생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소통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명확히 보았던 것은 우리 교육의 방향이 ‘행정 중심의 교육’이 아닌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한 것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찾아 보완하며 실천하는 현장 중심, 학생 중심의 교육정책이 조속히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편집자주
이 글은 강득구 국회의원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2021학년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2021.2.20.)의 주제발표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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