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3)의 하위 영역인 ‘창의적 사고력 평가’에서 한국의 15세 학생들은 회원국 28개국을 포함하여 총 64개국 가운데 1위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평균점수 33점에 비해 5점이 높은 것이며 독보적 1위인 싱가포르(41점)에 비해서는 3점이 낮은 것이다. 이로써 한국 학생들은 공부는 잘하지만 창의력은 떨어진다는 오랜 통념을 깨는 것이어서 다소 의외이자 다행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창의적 사고력에 대한 ‘자아 효능감’은 49위로 하위권이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학생들은 창의력 평가 유형인 ‘다양한 아이디어 만들기’ ‘아이디어 평가하고 개선하기’ ‘사회적 문제 해결’ ‘과학적 문제 해결’ 등의 평가 항목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했다. 지난 PISA 2020 평가에서도 한국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성취도는 최상위권이지만 두 과목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는 세계 평균보다 낮았다. 왜 이렇게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문제일까?
우수한 학생일수록 성취 목표가 높다. 문제는 그로인해 자신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권 학생들은 자신감이 대체로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어려서부터 겸양지덕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서구 대학에서 동양권 학생들이 수업 중에 질문을 잘 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 성향에서도 증명이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정답이 아니면 모두 오답으로 간주하는 평가 시스템과 작은 실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제도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렇게 움츠려드는 청소년들이 회복탄력성조차 더딘 것은 평소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도전을 기피하는 사회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분석된다.
필자는 한때 재직했던 고등학교에서 비교적 학력이 높았던 일반고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에 절대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감’을 꼽았다. 그들은 공부에의 자신감을 가장 원했고 실제로 자신감을 얻으면 학교생활 자체가 즐겁고 편안해 정서적 영향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학교를 옮겨서도 동일한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거의 일치했다. 그만큼 자신감은 청소년들의 일등 관심사였고 이는 어느 학교든 공통된 요소였다.
최근 필자는 유치원 다니는 43개월 된 손녀를 통해서도 일찍부터 자신감은 어린 아이의 성장에도 크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속성은 처음 하는 일은 머뭇거리고 망설이지만 일단 반복하고 익숙해져 자신감이 붙으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하며 반복놀이가 점차 창의적 놀이로 발전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어떻게 자신감을 키워주고 실패를 무릅쓰고 반복해 시도하도록 격려하느냐의 지도 방식이라 믿게 되었다.
현재 초중고에 걸쳐 각 학교별로 학습부진아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2023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의 발표에서와 같이 교과별 성취수준에서 고2 수학 1수준(기초학력) 미달이 17%나 나오면서 '수포자' 대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포자’까지 늘고 있다 한다. 이를 두고 혹자는 코로나19의 여파라고 말하기도 하고 빈부 격차에 따른 사교육의 여파로 학력 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습부진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선천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평소 생활 습관이나 공부 습관에서의 소극성과 익숙한 것만의 지나친 의존은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고 성장의 기회를 잃게 만든다. 실패를 반복하여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편식이 건강의 적신호를 가져다주듯이 다양한 체험 내지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신감을 배양해야 한다.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또 실패를 통해 자신감을 얻도록 하여 지적 역량 못지않게 몸과 마음의 근육을 강화하는 자신감 키우기는 우리 교육의 큰 과업이자 의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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