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이초 교사 1주기인 18일 서울교대. 오후 5시 무렵이 되자 검은 옷을 차려입은 교사들이 연구동에 마련된 추모식장으로 모여든다. 한 교원단체가 마련한 ‘함께라는 믿음, 다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이름의 추모식이다.
수도권에 물폭탄이 쏟아지는 악천후여서 참석인원은 극히 저조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또 전국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리는 데다 같은 시각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육부장관과 서울시교육감, 여야 국회의원, 시의원, 교육계 대표들이 참석한 추모식이 열리고 있어 굳이 서울교대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삽시간에 ‘검은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년 전 그날들처럼 조문식장 앞에는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서울, 인천과 경기는 물론 경북에서까지 폭우를 뚫고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파는 더 몰렸다, 이미 추모행사장은 입구까지 가득 차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었다. 발길을 돌리는 교사들이 캠퍼스엔 곳곳에서 숨죽여 우는 모습이 보였다. 깊은 슬픔의 행렬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2.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작년과 확연히 달랐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주뼛거리거나 피해버리던 1년 전 그들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응대했고 당당했다. 더 이상 순둥이처럼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한 교사는 그동안 모래알 같은 조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서이초 교사 죽음을 접하면서 모든 게 변했다고 했다.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방관하는 사이 어린 후배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자신들의 책임 같았다고 했다.
자괴감에 빠진 그들에게 지난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는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고 한다. 한 교사는 “태어나서 그렇게 가슴 울렁거린 순간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집회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어려움이 처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는 생각에 든든했다. 그 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학교에서건 어디서건 할 말은 했다.
그래서일까? 주변이 달라졌다. 고참 부장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얼마든지 이해한다며 거들어 줬고 교장, 교감은 되레 눈치를 본다. 교육부나 교육청도 마찬가지. 힘으로 밀어붙이니 그들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끽소리 못한 채 시키는 대로 하기 바빴는데 이젠 그들이 눈치를 본다는 사실에 은근 쾌감마저 들었다.
부당한 현실 우리 힘으로 바꾼다 .. 정치기본권에 승부수
연천에서 온 교사는 “교사로서 교육활동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도 어려워 했던 지난달이 너무 후회스럽다”며 “이제는 뭐든 과감하게 요청하고 안 되면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교권 5법이 마련됐지만 현장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더 이상 정치권에 기대할 생각이 없다”면서 “우리 스스로 정치적 힘을 길러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면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도 못 했어요. 교사니까 참고 희생해야 한다고 배웠고 실천했고요.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살아와 뭐든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여겼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우리를 가장 만만하게 보고 이용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은 건 억울한 죽음뿐이었고요. 교사로서 사명감이나 헌신 보다 이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라도 보장받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국화 한송이 올려놓고 돌아서던 20대 여교사는 기자에게 이말은 꼭 써달라고 했다. 서이초 이후 1년, 교사들이 달라졌다. 교육계 권력 지형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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