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곡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육계에 널리 퍼진 안타까운 말이 있다. 바로 “교사는 많으나 진정한 스승은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교사가 스승으로 존경받고 섬기는 사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교사가 지역사회의 인사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존경받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시대와 사상이 크게 변한 요즘, 혹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사회든 교육자가 존중받고 그의 존재감이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왜냐면 교육자는 지역, 사회, 국가, 세상을 건강하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인재를 육성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을 회고해 자신에게 크게 영향력을 끼친 스승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이나 트라우마로 인해 이 사회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에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다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을 우선하여 돌아볼 때 마음속에 살아있는 스승은 평생의 기억으로 간직되며 늘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스승의 본질이며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되는 것일까?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언급함에 넓은 양해를 구한다. 필자는 고2 학년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물결이 휩쓸고 미래의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하며 기간산업을 일구고 국가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던 때였다. 대학은 이공계열 인원을 크게 증원하고 이공계열 출신들이 우대를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법학이나 의학 계열에 밀려 다소 정체되고 의기소침한 상태이나 당시는 상당한 인재들이 대개 이공계열로의 진학을 꿈꾸고 삶의 이상(理想)으로 삼았다.
고3으로의 진급을 목전에 두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원했던 필자는 고2 주임선생님(현재 의 학년부장)의 강력한 거부와 설득에 학년말 대부분을 상담으로 보냈다. 당시에 50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주임선생님은 미래 대한민국 사회를 예견하며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의 시대가 올 것을 확신하고 계셨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 사회가 과학, 기술이 급진적으로 성장⋅발전하는 시기를 거쳤고 최첨단(하이테크) 기술이 지배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미래에 대한 예측력과 상상력이 부족했던 필자는 그저 이과에서의 성적만 믿고 문과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넘쳤다. 여기에 진로변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공영방송사의 국민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여로’에서 지적 장애 주인공의 아들이 당시 하늘의 별 따기였던 고등고시(사법시험)를 합격해 온 마을의 축하를 받으며 출세와 영광이 보장되는 스토리가 너무도 감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무언가에 한번 꽂힌 단순한 마음은 어떠한 설득과 상담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다”란 말씀을 끝으로 문과로의 전과에 결재를 해주셨다.
필자는 그 뒤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졌던 주임선생님을 마음에서 지을 수 없었다. 왜냐면 고3 문과 시절은 생각과는 달리 시련의 연속이었고 소위 심각한 ‘고3병’으로 치료를 받으며 악전고투하던 시간만이 흘렀기 때문이다. 법대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사대로 진로변경을 한 것이 평생 교육자의 삶으로 고착되었다. 온갖 마음의 굴곡을 안고 교직생활을 감당하던 것이 오늘의 인생으로 남았다. 그것은 출세도, 가문의 영광도 아닌 평범한 삶에 그쳤고 우물 안 개구리로 청소년들과의 만남에 만족하는데 머물렀다.
어떤 교사가 진정한 스승인가를 생각하며 살아 온 지난 날, 늘 마음속에는 확고한 신념으로 제자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설득과 상담의 열정과 진심을 보여주신 스승의 모습은 교육자로 정년을 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표(師表)로 남아있다. 닮고 싶은 스승은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우선이라는 사고의 근원은 이런 배경에서 연유했다. 요즘 교직이 크게 흔들리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이 경제적 처우의 문제이든, 학생과 학부모와의 갈등이든, 교사가 스승으로 우뚝 서려면 학생을 위하는 자세와 굳은 신념, 흔들리지 않는 교사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이라 믿는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인 것이 배움의 진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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