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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화장실, 안녕하십니까
지난 18일 찾아간 서울 관악구 D중학교 화장실. 4층 건물 여학생 화장실에는 10칸 중 5칸이 잠겨있었다. 변기가 고장 난 건지 안에서 잠가놔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세면대 위에는 물이 흥건했고, 거울은 더러웠다. 대걸레를 빠는 세면기에 먼지와 쓰레기가 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걸레가 썩었는지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남자화장실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문짝에 선팅이 떨어져 화장실 안이 훤히 보였다. 화장실로 들어가니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에 오물과 담배꽁초가 뒤섞여 있었다. 변기 밑에는 곰팡이와 찌든 때가 눌러 붙어 보기에도 흉했다. 화장실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고, 환풍기는 안 돌아가는지 먼지로 뒤덮인 채 방치된 듯 보였다. D중학교 행정실 직원은 쉬는 시간이면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몰려 답배를 피는 통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잠깐 있었는데도 매캐한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여학생보다 남학생, 화장실 불만족 커
학교환경개선지원센터가 지난해 11월 서울 시내 초중고 4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학교환경 중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것으로 ‘화장실’(33.1%)을 꼽았다. ‘교실’과 ‘청소도구함’은 각각 22.2%, 12.1%였다. 학교 화장실 사용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냄새(악취)가 심하다’(28.3%)와 ‘지저분하다’(20.2%)로 유지관리 요인이 지적됐다. 우리학교 화장실은 얼마나 청결한가를 묻는 질문에 38.2%가 ‘더러운 편이다’고 대답했고, 31.7%가 ‘보통이다’고 응했다. 학교 화장실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인식은 어떨까. 공주대학교 학교시설연구센터가 200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의 화장실 불만족도는 40%인데 반해 남학생의 불만족은 55%로 집계됐다. 교사는 27%가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예상을 뒤엎고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불만이 컸다.

화장실을 오염시키는 락스와 방향제
서울 관악구 D중학교는 용역업체에 화장실 청소를 맡긴다. 매일 아침마다 아주머니들은 제일 먼저 화장실 휴지통부터 갈고, 세면대와 변기, 바닥을 차례대로 물청소한다. 마지막으로 세제를 풀어 닦고 찌든 때나 곰팡이가 핀 곳에 락스를 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나는 악취를 가라앉히고자 방향제를 걸어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락스와 방향제가 화장실을 더 오염시킨다고 경고한다.
교육시설환경연구센터 김진희 연구원은 “화장실 악취의 일차적인 원인은 변기 안 요석에 끼는 찌꺼기와 오염 때문이다. 변기 안에 세균이 득실한데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한다. 화장실 냄새의 원인을 놔두고 변기 주위에 낀 세균에 락스만 뿌린다. 그렇게 해도 화장실에서 냄새가 많이 나니까 락스를 또 들이 붓고, 나프탈렌 같은 방향제까지 걸어둔다. 나프탈렌은 인체에 아주 유해한 물질인데 다들 잘 모른다. 진짜 문제다”
변기 속만 깨끗한다고 악취와 오염이 해결될까. 이 연구원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변기, 배관, 바닥도 문제지만 천장이도 오염의 진원지이다. 화장실마다 환풍기가 달려 있지만 작동되는 건 얼마 없고, 먼지 쌓인 게 대부분이다. 환풍기가 작동되지 않으니 화장실 공기가 밖으로 못 나간다. 학생들이 담배 핀 연기, 청소하면서 튀기는 오염물질이 나가지 못하고 천장에 붙어 찌꺼기가 된다”

학교는 계속 세균에 젖어있다
지난 2008년, 서울 관악구 주민이 K초등학교 교장과 구의원에 진정서를 넣었다. K초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게 진정 내용이었다. K초는 부랴부랴 학교환경지원개선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학교환경지원개선센터는 수억 원이 들어가는 리모델링 대신 700만 원으로 클리닝을 하자고 제안했다. 먼저 깨진 대걸레 세면대부터 보수했다. 화장실 클리닝 기술과 시설을 겸비한 학교환경지원개선센터는 무리한 리모델링과 건축보다 전문적인 화장실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이창국 사무총장은 “학생들이 가장 곤욕스러워 하는 게 대걸레 빠는 건데, 대걸레를 빨고 나서 짤순이(짜는 기구)가 바로 옆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다른 곳에 있거나 이것마저 없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충 발로 비벼서 빤다. 대걸레를 짤순이에 넣고 짠 다음, 처리 안 되는 물도 문제다. 안에 물이 그대로 있으니 악취가 심해지는 거다”
이 사무총장은 화장실마다 한켠에 자리한 도구함도 세균의 온상이라고 지적한다. “늘 보면 걸레 도구함은 화장실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대걸레를 빠는 세면기 옆에 두거나 변기가 있는 화장실 한 칸에 몰아넣는다. 학생들은 나름 빤 대걸레로 화장실과 교실 구석구석을 닦는다. 말만 대걸레 청소지 세균으로 청소하는 거다. 학교는 계속 세균에 젖어 있다”

디자인에 가려진 화장실 구조 문제
학교 화장실 문제는 비단 악취, 더러움 등 위생문제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호소하는 세면대 높이는 취약한 학교 화장실 구조의 단면을 드러낸다. 통상적으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생까지는 세면기 높이에 따른 사용 불편함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현행 공중화장실 법에 규정된 세면대 70cm는 높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섞인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교실이 있는 화장실 세면대는 60cm로, 고학년이 사용하는 화장실의 세면대는 70cm로 달리 높이를 설계해야 한다.
학교 화장실의 구조적인 문제는 정부 부처 주도의 사업에서도 간과됐다. 학교 화장실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된 문화관광부의 ‘문화로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 화장실’ 사업은 디자인에 치우쳐 종전에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화장실 구조를 바꾸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름다운 화장실을 만드느라 환기시설이 생략되거나 세면대 밑 공간을 활용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학교 화장실에는 환풍기가 설치돼 있지만 밖에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환기시설은 없다. 바닥으로부터 20cm 떨어진 지점에서 작은 크기의 환기시설을 만들면 화장실 내 공기가 순환될 수 있다.
디자인 요소를 내세운 문광부의 학교 화장실은 학생들의 요구도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책이나 가방을 마땅치 둘 곳이 없어 쓰레기통 뚜껑에 놓는 일은 흔하디흔한 장면. 선반 하나만 둬도 학생들의 화장실 사용은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쓰레기 한 번 씻고 버리는 일본
청결과 위생이 몸에 뱄다는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학생 대부분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손을 씻고 나서 자신의 손수건으로 물기를 없앤다. 덕분에 일본의 학교들은 휴지나 수건을 따로 구비하지 않아도 되고, 핸드드라이기(손 건조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화장실 한 칸을 걸레나 청소도구함으로 사용하는 건 일본도 우리나라와 똑같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일본은 대걸레를 바닥에 닿게 하지 않고 위로 올린다. 대걸레 막대를 바닥에 놓고 걸레를 위로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 건조가 가능하고, 바닥의 먼지와 균이 묻지 않는 효과도 있다.
일반쓰레기를 한 번 씻어서 버리는 것도 특이점이다. 청소원들은 화장실과 교실에서 나온 일반쓰레기를 바로 버리지 않고 수돗물을 중소한 물로 쓰레기를 한 번씩 씻는다. 그러면서 일반쓰레기에 섞인 재활용품을 다시 골라내고, 일차적으로 쓰레기의 오염을 씻어내 오염 정도를 줄인다. 손이 많이 가지만 청결 습관이 몸에 밴 일본인들은 기꺼이 한다. 일본인들의 투철한 청결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장실 가면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
학교 화장실의 비위생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지저분한 환경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학생들이 화장실 가는 게 꺼림칙하고 곤욕 것 자체가 스트레스 받는다는 증거다. 화장실 악취는 두통을 유발해 학습력과 집중력 저하를 불러온다. 악취도 곤욕이지만 이를 해소하려고 뿌리는 방향제가 학생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특히 가스를 통해 분사되는 방향제는 에탄올 때문에 두통과 구토를 유발한다.
미세 먼지와 세균이 득실거리는 화장실이 학생들의 정서와 심리를 불안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이은주 석사 논문 ‘학교 화장실 지원시설에 따른 중학생의 사용 및 요구에 관한 인식’은 일부 학생들이 학교에서 물을 아예 안 먹거나 식사 때마다 국물을 마시지 않는 현상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것을 말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논문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청결교육이 도외시됐다고 지적했다. 학교나 가정에서 화장실 사용법 등 청결교육이 필요한데 학교 교육자체가 학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간과됐다는 것이다.
이창국 사무총장은 “유초등 시절부터 철저하게 청결교육을 시키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여학생들이 월경을 할 때면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 학생들의 성장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