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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어느 순간부터 이 땅에서 교육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학생들에 대한 동정과 측은지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솔직히 교육자로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채우게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교육자로서 이 땅에서 경쟁과 입시에 몰입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향한 무책임과 그들에게 인간 본연의 권리인 행복하게 살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대학입시를 위한 문·이과 통합수능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이른바 ‘불수능’, ‘용암수능’이라 칭하며 근심에 가득 찬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작년에도 일반고 교사들은 아이들이 받아 든 성적표에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동안 학생과 교사의 삶을 옭아매던 코로나19로 인해 학력 격차, 학력 저하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수능이란 대입제도는 과연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여 공정하게 실현되며 또한 공교육은 얼마나 교육 본연의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였다. 학교의 최우수 내신 성적자도 수능의 영역별 2등급조차 맞추기 어려운 현실에선 가르치는 자의 무력감과 한계에 좌절감마저 느끼게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중등학교는 지식 교육만 있을 뿐 성, 정치, 생태, 금융 등 인간으로서 살아갈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이는 곧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방치하는 것이다. 이에 이 땅의 지식인들은 탄식하고 우려한다. 그저 문제 풀이를 위한 학습기계가 될 뿐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멈춘 지식 교육과 이를 부추기는 경쟁교육은 이 땅의 학생들을 최악의 괴물로 만들고 있다. 주입식 입시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이젠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고차원의 사고능력을 측정한다는 수능은 이 땅에서 지옥의 사자처럼 그 위세를 떨친다. 수능 한 번으로 개인의 인생이 결정되는 한국의 ‘원샷(one-shot) 사회’는 언제쯤 개인의 꿈과 적성을 실현할 기회가 폭넓게 열려 있는 선진 독일과 같은 ‘텐샷(ten-shot) 사회’로 전환이 될 것인가.

우리는 한국의 10대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잘못된 교육을 언제쯤 멈출 것인가? 반교육적, 반사회적 교육 풍토를 언제쯤 개혁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을 이 끔찍한 입시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한 것인가? 학교에서 노예 감독관 노릇에 머무르는 교사의 역할은 언제쯤 멈출 것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할 권리,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 자신의 고유한 삶을 향유할 권리, 인간적인 품성을 키우고 시민적인 자질을 높일 권리, 개성과 천재성을 발견할 권리를 언제쯤 제공할 것인가? 말로는 교육개혁을 외치지만 생각과 행동이 따로따로인 우리 교육은 이젠 미래 세대를 위해 개혁을 넘어 혁명이 절실해 보인다.

2022학년도 제1회 고등학교 1,2,3학년 전국학력평가를 실시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통합수능이 ‘문과침공’을 유발하는 입시 문제를 제기하며 온통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그럴 때마다 이 땅의 무기력한 교육자로 살아가는 현실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39년의 시간을 고등학교에서 교사, 교감으로 봉직해 온 필자로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 문제를 다시금 제기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가 지적한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와 독일 현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지적한 ‘야만의 다른 이름인 경쟁’만을 부추기는 한국 사회를 언제쯤 각자도생의 경쟁교육에서 연대와 협력의 민주시민교육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 교사들이 ‘헬조선’, ‘이생망’을 외치는 아이들의 삶을 볼모로 잡는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인 입시제도를 개혁하도록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교육자로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용기있는 행동으로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단지 필자만의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