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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최근 정부는 2025년에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교육계는 그동안 몇 가지 우려하는 바를 꾸준하게 제기했으나 개선은 되지 않았다. 앞서 2022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 하계세미나에서 교육부 출입기자단은 대학 총장 1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90명(67.6%)의 총장은 고교학점제 도입 시 확대할 전형으로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에 60.47%, 학생부교과전형에 22.09%, 수능 위주 전형에 15.12%, 기타 전형에 2.33%의 선호도를 보였다.

이는 사실상 고교학점제 도입 시 학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학종은 수시전형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는 전임 정부가 ‘조국 사태’의 불공정을 무마하는 조치로 학종 비중이 큰 주요 16개 대학에 2023년도까지 수능 전형(정시)을 40%까지 확대토록 요구한 것과 상당한 모순을 드러낸다. 고교학점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수시전형과 궁합을 이뤄야 제격이다.

최고 지성의 상징인 대학 총장들은 고교학점제는 수능보다는 학종에 기반을 둔 대입전형으로 더 적합하다고 양심 고백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빈부 격차에 따라 오히려 특정 학교, 특정 지역,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한 수능 전형을 강조하고 이를 권장해 온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치가 공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그동안 어렵게 자리를 잡아 온 수시전형을 특정 계층과 우수한 학생에게 유리하게 수능 강화로 돌아선 것은 조삼모사식 교육철학의 부재다.

그동안 고교교육 현장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놓고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기에 획일화된 교육 과정을 탈피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이 선택한 교육 과정이기에 학생 중심 교육을 이룰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입시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 정상화를 기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발표다. 이런 명분 앞에 누가 감히 이의를 달고 반대할까. 이런 대세를 거부하면 변화에 저항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무책임한 집단이라고 비난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교사는 물론 학부모 사이에서도 고교학점제에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여기 다시금 두 가지 문제점을 직시해 본다. 첫째, 전국의 모든 학교가 고교학점제 실행 여건을 갖추기가 매우 어렵다. 제반 시설 구축뿐 아니라 공동체가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표 구성이다. 학생들의 조건을 전부 수용하면 정규교과 시간에 과목을 다 편성할 수 없어 수업의 연장이 필요하다. 이는 교사와 학생 모두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 또한 대다수 교사가 2~5과목을 담당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업에 대한 피로감이 훨씬 크다.

둘째, ‘학생 중심 교육 과정’이라는 명분은 허상이다.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필사적이다. 예컨대 1학년 공통과목을 내신 상대평가 하면 2~3학년에서는 이미 내신에 불리한 학생들은 수능에만 매달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사라지기 쉽다. 수능에 몰입하여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만을 고려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특정한 대학, 학과가 요구하는 의무과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이 아니라 대학 필수 지정 과목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입시경쟁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교육부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입시경쟁을 더욱 부추겨 민주시민, 세계시민 육성 교육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교학점제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수많은 시행착오 교육정책 중의 하나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는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과는 양립할 수 없는 제도다.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서 말없이 공교육을 지탱해 온 교사들에게 가혹한 부담만 줄 뿐이며 정작 그들의 실행 의지를 꺾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재 교사들의 대부분이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부의 획기적인 투자와 교원 수급이란 정책적 개혁이 함께하지 않는 고교학점제는 단지 이상(理想)에 그칠 뿐이다. 학생 중심 교육을 구현하려면 이에 합당한 궁합으로 재고(再考)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