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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순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그동안 우리 대학의 입시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대학입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가정 하에 시험성적(특히 학업성적)이 결정적인 학생선발의 기준으로 되어 왔다. 특히 학교의 학업성취도나 대입수능의 상대적 석차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를 무한 학력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이미 합격할 수 있고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대학입시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학원을 찾고 있으며,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학교교육의 부실로 인해 학원을 찾고 있으며, 심한 경우는 부모님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학원을 찾도록 강요당하기도 한다. 학교교육과 대학입시의 괴리로 인해 학교교육 이외의 추가적 과외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왔다. 학교교육과 대학입시 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과외 필요가 커지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행 대학입시와 고등학교 교육간의 특이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교에서 충분히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이루어지는 잦은 대학입시의 변화는 과외를 부추기고 사교육을 강요한다. 학교라는 공교육체제는 대체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경쟁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할 동기가 부족하다. 그러나 사교육은 대학입시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빠르게 맞추어주기 때문에 학원의 과외수요를 촉발시킨다고 할 수 있다. 입시준비를 위한 과외수요는 ‘치열한 입시경쟁’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과거에는 대학진학 수요는 많은데, 대학진학 기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했으나, 현재는 대학의 수요-공급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고등교육체제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학교 간 서열이 확고해져서 적절한 적성보다는 소위 일류대학의 진학 열망에서 대학입학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외를 유발시키고 있다.

더불어 전반적으로 학교 수업의 질이 낮다는 사실이 과외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과밀 학급과 낙후된 교육시설로 특징 지워지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개성이 무시되는 획일적인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다. 개별 학생의 적성, 능력, 흥미 등에 관계 없이 동일한 교육내용·방법이 적용되고, 학생들의 학습 결손 누적이 방치되고 있다. 개성 존중에 대한 인식 부족, 교원당 학생수의 과다, 교육 투자의 영세성,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의 부족 등이 열악한 교육여건을 초래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 풍조로 이어져 과외를 유발하고 있다.

학업 능력에 차이가 많은 이질 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수업이 개인·소수 동질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과외 수업에 대해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시장 경쟁 원리에 따라 과외 공급자는 생존하기 때문에 열심히 잘 가르치지 않으면 도태되지만, 학교 교사들은 열심히 잘 가르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체제에 속해 있기 때문에 생존 차원의 경쟁력 확보에 둔감하다. 학원이나 과외 교습자들은 시장 확보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개별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과외에 대한 매력을 갖게 한다. 이에 따라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교과 학습 이외에 자녀의 진로 지도 혹은 진학 지도까지 과외 교습자나 학원 강사에게 의존하는 풍토가 발생하고 있다. 대학입시 관련 정보 체제의 부재로 인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원하는 대학의 희망하는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심리적 불안을 느끼게 되고, 위안을 얻기 위하여 학원을 찾게 된다.

학교와 교사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불신하는 풍토 속에서 교직 사회 전반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는 교원이 증가하고 있다. 과다한 업무나 서류 처리 등 교육 행정 기관이나 학교가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한편 과외 수업이 만연되어있는 풍토도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 대두분이 학교 밖에서 잘 배우고 있다고 판단하여 수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대학입학전형제도가 사교육을 받는 것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