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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谷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

연구중심의 대학이자 이공계 인재들의 요람인 KAIST는 2021년 이광형 총장이 취임하면서 “도전적 연구를 위해서는 실패가 불가피하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성공의 발판으로 삼자”고 실패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교육의 소리를 높였다. 그런 취지에 발맞추어 2023년 설립 3년째를 맞이하는 ‘실패연구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전파시키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여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예체능 등 더 자유롭고 다양한 분위기에 관심을 가지는 학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패연구소의 ‘실패 용인 문화’ 확산은 학생들에게 실패 사례를 글로 쓰게 했고, 편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모여 실패와 관계된 경험을 사진으로 공유하거나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통해 실패를 ‘자랑’하는 단계까지 발전해 왔다. 연구소장인 조성호 교수는 “혼자서 괴로워하던 실패를 공유하고 소통하다 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고 깨닫는 문화를 만들고자 함”을 강조했다.(동아일보, A2, ‘실패 공유 실험’ 2023.11.03.) 이는 우리 교육의 피할 수 없는 경쟁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정신역량을 기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중국 당나라 역사서 중의 하나인 <구당서> ‘배도전(裵度傳)’에는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병가(兵家)에서 ‘항상 있는 일’이란 뜻으로 어떠한 실수나 또는 잘못을 가볍게 여길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당나라 헌종 시에는 전쟁에 시달리면서도 개혁을 늦추지 않았는데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두 번의 작은 승패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권장되어 잠시나마 당나라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이는 어떠한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너무 낙심하거나 연연하지 말라는 역사의 교훈으로 소환할 수 있다.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매슈 사이드는 『블랙박스 시크릿』에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춘다 해도 실수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했다. 그는 실패로부터 성공까지 가는 가장 정확하고 안전한 길을 항공업계의 블랙박스에서 찾아냈다. 항공기에는 두 개의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사고가 일어나면 박스를 열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고의 원인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같은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절차를 수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실수를 통해 배우는 시스템이 튼튼하게 구축된 국제항공운송협회 소속의 항공사들은 사고율이 0.12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수에 위협을 느끼기보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끈기, 그러한 시스템과 문화를 통틀어 ‘블랙박스 사고(Black Box Thinking)’라 명명하며 이를 개인과 기업, 사회의 차원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학교에선 매일 원치 않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때마다 실수나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은 청소년들의 소중한 삶의 경험이자 자산이 될 수 있다. ‘셋이서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논어의 가르침처럼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도약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비에 젖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삶은 없듯이 특히 청소년들은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과정에서 흔히 그렇다.

학생 누구나 작고 사소한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한다면 어찌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절망이나 포기를 몰랐다. 오히려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치열한 경쟁 아래서 실수와 실패로 인해 실의와 좌절에 빠진 학생들이 ‘이생망’을 외치고 학습 장애와 인성계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의 실패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학교문화를 제도화해서 훗날 ‘인생역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도록 해야 한다. 전술한 KAIST와 같이 ‘실패 주간’의 운영을 모델 삼아 초중고 학생들의 모든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오뚜기와 같이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교육을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