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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수필가, 前 상신초등학교 교장

주말에 광화문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낭패를 당했다.

책을 사서 나오는데, 어떤 단체의 정치집회 중이었다.

‘어차피 토요일마다 있는 집회겠지...’ 적당히 피해 가려고 했다.

몸을 돌리려던 찰나, 발언대에 고등학생 발언자가 올라갔다. 교직을 떠난 지금도 ‘학생’이라는 말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버릇이란 게 참 무섭긴 하다.

단상에 올라선 여학생은 큰 목소리로, 하지만 조금은 쉰 듯한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내용은 둘째치고, 논리력이 심하게 떨어지고 앞뒤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논리력, 설득력이란 게 처음부터 누구나 다 좋은 게 아니니까. 천천히 키워가면 되니까. (하지만, 요즘 고등학생들이 수업방식의 변화 등으로 과거에 비해서 논리력, 발표력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아이의 발표는 좀 아쉽긴 했다.)

학생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 앞에서 ‘발언의 자유’를 몸소 실천한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수업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비민주적인 수업방식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런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다음도 바람직할지는 의문이다.

집회장 주변은 젊은 경관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부분은 20대 초반일 경찰들이 몸으로 부딪혀오는 시위대를 제지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은 참 안쓰럽다. 집회가 허가된 지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시위대들은 몸으로 부딪힐 뿐만 아니라 발길질까지 했다. 나이 든 게 권리인가?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게다가 경관들이 모두 다 소음방지용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놀랐지만, 곧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집회장의 스피커는 귀를 찢을 만큼 크게 울렸다.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도, 소리는 들렸지만 ‘연설’이기에 앞서서 ‘소음’이었다.

내가 짧은 시간동안 괴롭다고 느꼈던 소음을 경관들은 종일 들어야 할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소음’에 힘들어 했고, ‘교통혼잡’이라는 불편도 겪어야 했다.

나 역시 집회 때문에 장소가 바뀐 버스정류장에 가기 위해 사람들한테 밀리며 평소보다 많은 거리를 걸었더니 무릎통증이 심하게 와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집회에서 연설을 했던 여고생이 걱정됐다. 연설내용을 되새겨 봤을 때 그 학생은 그다지 생각이 깊은 편은 아니다. 아마도 주변의 누군가의 말을 듣고 따라 외쳤다고 생각된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아이가 그날 무엇을 배웠을까?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아이는 ‘발언의 자유’, ‘말할 수 있는 권리’ 등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실천으로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불편을 주고 경찰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동지(?)들을 보며,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권리를 밟아도 된다’라는 것을 배웠고,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이 정당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질서를 무시하는 집회는 보수건 진보건 진영을 가리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정치집회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타인의 불편은 생각지도 않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교육과정 중에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나?

아이를 발언대에 세울 생각까지 했다면, 그 아이가 눈으로 보고 배울 집회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질서 속에 이루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저런 식으로 집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아이 교육 걱정을 했을까?

그 무질서한 어른들에게 그 아이는 그냥 수단이었을 뿐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