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오후 무렵에 전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통과하던 중 이었다. 미국인 부부로 보이는 배낭 여행객이 5~6살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승차했다. 지쳐 보이는 아이는 눈동자를 굴리면서 객실 안쪽을 응시했지만 도저히 사람들 틈새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 중간 좌석의 승객이 자리를 뜨려 하자 꼬마는 어렵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잽싸게 가서 앉았다. 그러자 아이의 아빠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것은 아이가 앉은 그 자리는 바로 앞과 주변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에 네가 앉을 차례가 아니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아이는 매우 싫은 표정이었지만 아빠의 말에 순응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에게로 다가와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이런 아들을 온몸으로 감싸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던 그 말- “Oh, good boy!”-은 가슴속에 감동의 명대사로 남게 되었다. 그때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빠의 눈빛은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 빛이 났다. 진심이 배어 있는 언어가 주는 자녀교육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담임교사로 인연을 맺어 고3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제자가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메시지를 보내왔다. 장래에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이 학생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었다. 시기적으로 대학진학용 맞춤형 글쓰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준비로 평상시 신문읽기와 사설에서 제시하는 글감을 찾아서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에세이 쓰기를 제안하였다. 학생은 이러한 제안에 공감하며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하고 기꺼이 동의하였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성실하게 에세이 쓰기를 실천하였다.
결국 학생의 글쓰기 연습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유용한 포트폴리오 자료가 되고 또 수시전형에 필요한 자기소개서에 의미 있는 학교생활의 경험으로 활용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명문대학 진학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선생님~~, 저 ○○이예요^^ 스승의 날이라 찾아뵙고 싶었는데 학교 언론사에서 일하게 되어서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메시지라도 남겨요.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힘든 시기에 선생님처럼 좋은 분이 계셔주셔서 잘 견뎌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지금은 대학에 왔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처음 썼던 에세이를 요새는 맨날 쓴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써봐서 그런지 지금의 저는 에세이 쓰는 걸 참 좋아해요. 저번 학기에는 과에서 1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았어요! 자랑 같지만 자랑이예요!! 칭찬해 주세요. 선생님 제자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수년 전, 품 안의 자식으로만 감싸던 아들이 21개월의 최전방 DMZ 철책근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자나 깨나 자식의 안전과 건강이 걱정되었다. 부대 인터넷 카페에 등업하여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었고 그것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레퍼토리와 함께 편지로 전달되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고 했던가. 드디어 아들이 제대를 하고 부자상봉을 마쳤을 때, “아버지, ‘남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손실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베풀어라. 남에게 무조건 주는 것이 나중에 2배, 3배 이상으로 돌아온단다’ 군에 있을 때 아버지가 써 준 편지입니다. 가슴 깊이 새겨서 군대 생활도 아무런 탈 없이 잘 마쳤으며 저보다 제가 속한 집단을 먼저 생각하며 생활하니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라고 고백하며 큰절을 올리던 아들에게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솟구쳤다. 아, 부모의 진심어린 말이 자식에게 큰 성장의 바탕이 되었구나! 아들의 진실한 고백이 고마웠고, 그의 성장이 자랑스러웠으며, 부모로서 한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힘들고 지친 고3 학생에게 어느 무더운 여름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치고 힘든 요즈음에 샘은 ○○이를 위해 기도한다. 늘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네가 좋다^^. 화이팅!” 입시스트레스에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자주 찾아 담임을 보기가 부담스럽던 ○○은 그 후 생기를 되찾은 모습으로 무더위를 넘기고 졸업 시까지 학급공동체의 활동에서 담임교사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또한 결과로써 소위 ‘In 서울’ 여자대학교에 진학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처럼 진심이 담긴 언어에는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늘 감동이 있고 삶의 보람과 행복감을 한껏 고양시켜 주는 것 같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삶에 직면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전쟁 같은 일상을 지나고 있다. 그럴수록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나 경험에 진심을 담아 주고받는 메시지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때로는 오해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표현하지 않은 것은 무효’라 하지 않는가.
사소한 것이라도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서로 공감하며 주고받는 언어의 세상에서 살아보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행복한 순간을 맘껏 느껴보자.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과 감동과 존중의 마음으로 침묵이 아닌 진실한 언어가 필요하다. 특히 장시간에 걸쳐서 학생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진실한 언어와 적합한 교육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삶의 충전소로 만들어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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