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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谷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

언제부터인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는 용어가 인구에 회자(膾炙)되더니 이제는 ‘알파세대(0세~중학생)’라는 신조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두 세대의 특징은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일찍 노출되어 이른바 인공지능(AI)이 압도하는 디지털 문명과 자연스럽게 친숙한 세대이다. 그들은 인체의 오장육부에 스마트폰을 추가해 자신의 장기(臟器)처럼 만든 ‘오장칠부’란 신조어의 주인공으로 인류 문명사에 획기적인 선을 그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천재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16세에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35세에 타이완의 디지털 장관이 된 오드리 탕의 말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이 말은 생소하고 황당하다. 이 말의 목적은 너무 일찍부터 자신을 특정한 용도로만 정의하지 말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쓸모만을 강조해 오히려 문제라는 역설적 인 생각이다.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쓸모를 특정 영역으로 정의하면 이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쓸모의 유효기간이 다할 때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다.

현재 인류는 인공지능(AI)과 로봇과의 동행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상생활의 어디서든지 AI와 로봇과의 협업은 자연스런 상태가 되었다. 예컨대 음식점 어디든지 배달 로봇의 존재는 알파세대들에게도 그의 등장에 처음에는 신기한 눈초리와 호기심을 유발하던 것이 이제는 다정한 오랜 친구처럼 친밀하게 느낀다. 이런 알파세대들이 향후 헤쳐 나갈 미래는 과거의 세대와 달리 수차례의 직업 전환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찍이 미래학자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예측해 누구나 평생 최소 4~5개의 직업을 전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용도를 특정하여 한 영역에 가두면 새로운 변화에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는 마치 운동 경기에서 한 포지션에만 익숙한 선수가 다른 포지션으로의 이동에 쉽게 실패하고 결국은 일찍 은퇴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과 유사하다. 더 이상의 존재가치가 없으면 퇴출이 되는 것은 직업의 세계에서 당연하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여기에는 오드리 탕이 말하는 ‘80 대 20’의 법칙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 그는 80%의 시간은 현재 관심사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기르되 20%의 시간은 다음 단계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왜냐면 현재 관심사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되거나 쇠락하면 준비해 둔 나머지 20%를 활용해 빠르게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이후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시 유비무환의 자세로 다음의 20%를 준비해 둬야 함은 생존의 기본 법칙으로 삼을 만하다. 이는 다양한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폭넓은 인적교류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현대는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시대다. 한 분야에만 몰입하던 전문가 시대는 가고 이제 모든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하고 융합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 시대에 와 있다. 세상의 지식은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고 따라서 철 지난 지식은 그 효능이 크게 반감하고 있다. 우리 교육도 몇 년 전부터 문·이과 통합을 운영하고 있다. 가끔은 그 부작용을 침소봉대하여 비판하는 호사가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하지만 이는 범지구적으로 시대적 대세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청소년들의 진로교육 역시 꿈과 끼의 계발에 있어서 한 가지에만 올인하여 인간의 멀티 지능과 다양한 천재성을 일찍부터 소멸시키는 것을 경계할 일이다. 석학 최재천 교수는 고교시절 시인이 되고자 노력했고 또 미술부 활동을 함으로써 후에 그의 전공인 동물행동학 분야의 연구를 위해 정글에서 온갖 탐색을 할 때 매우 도움이 컸음을 고백했다. 현재 우리는 대학진학 시에 무전공 학과를 확대 운영하고자 한다. 이는 일부의 비판처럼 부작용도 있겠지만 이제 모든 초·중·고·대학의 진로교육도 투자의 경제 원리처럼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인간의 무한 잠재력과 천재성을 두루 배양하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