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을 마치고 학원을 가려던 초등학교 1학년 김하늘 양이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이날 오후 4시 30분쯤 학원 관계자가 학원 차량에 타지 않았단 연락을 받은 교사들이 학교를 수색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부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시청각실에서 자상을 입은 김 양과 A 교사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김 양은 끝내 오후 7시쯤 숨졌다.
김 양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40대 여교사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사는 최근 동료 교사에게 헤드록(상대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는 레슬링 기술)을 거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수업 배제 조치가 됐는데, 나흘 만인 지난 10일 학생을 살해하면서 안전해야 할 교실이 정신질환자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일 대전시교육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해당 학교 1학년생 김하늘 양을 살해한 교사 A씨는 정신질환으로 작년 12월 9일부터 6개월간 질병휴직에 들어갔지만 3주여 만에 복직했다. 우울증으로 6개월의 휴직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소견에 따라 휴직 신청을 해놓고, 3주여 만에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회복됐다’는 의사 소견서와 함께 복직을 신청했으나, A씨는 복직 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동료 교사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모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당 교사는 지난 5일 업무 포털에 접속이 빨리 안 된다며 컴퓨터를 파손했고, 6일에는 동료 교사에게 헤드록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부여잡아 논란이 있었다”고 전했다. “왜 나만 불행해야 하느냐”는 말을 했다고도 전해졌다.
A씨는 수업에 배제돼 짜증나서 범행을 저질렀단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종명 대전서부경찰서장은 A씨가 경찰에 “복직 후 3일 만에 짜증이 났다. 아무개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범행 당일 오후 시간대 외부에서 흉기를 사서 교내로 들어와 돌봄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와 같이 죽을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어떤 아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아이에게 ‘책을 주겠다’며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찔렀다”고 범행 방법을 경찰에 진술했다. 2학년 담임이었던 A씨는 김 양과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두고 학교 교육 현장에서 정신질환자를 거를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교사 신규 채용 시 신체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하지만, 정신질환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절차는 현재로선 없다. 특히 1급 정교사 자격증을 딴 뒤 정년퇴임 시까지 별다른 평가를 받지 않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질병휴직은 청원휴직으로, 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30일 이내 즉시 복직하게 돼 있다”면서 “해당 정신질환으로 인한 휴직이 반복됐다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었겠지만 한 번 휴직한 것이라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 우울증으로 휴직했는데 매번 심의위원회를 열어 다툰다면 인권 침해 등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에 따르면 2020년에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한 번 열린 이후 4년 넘는 기간동안 심의위원회가 개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는 교육기관 종사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2023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교 종사자는 9468명이었다. 2024년 상반기에만 7004명이 우울증 진료를 받아 연간 우울증 호소 직원 수는 2023년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 초등학교 종사자 1000명당 우울증 진료 인원도 2018년 16.4명에서 2023년 37.2명으로 5년 만에 2.3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신규 채용 시 정신건강 검사를 시행하고, 교사가 희망할 경우 무료로 정신건강 검진을 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그는 “학교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교육부와 관계 기관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교섭단체 연설 등 주요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대전교육감을 만나 상황을 공유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부총리는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배우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심각한 정실진환을 가진 이가 교단에 설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을 전하며 걸러내는 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으며, 경남도교육청은 학생이 돌봄교실 후 학교를 벗어날 때까지 동선과 활동 공간을 면밀히 확인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오는 18일 현안질의를 예고했다.
▲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 담장에서 시민들이 지난 10일 피살된 故 김하늘 양 (7)을 추모하고 있다.
불안한 학부모들… 녹음기능 앱 다운로드
현장선 “교권침해 우려” 반발
대전에서 방과 후 돌봄교실을 마치고 학교에 머물렀던 김하늘 양(7)이 같은 학교 교사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또래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만 아이 안전을 맡겨 놓을 수 없다”며 생전 김양이 사용했던 위치추적 앱을 포함한 다양한 아이 보호 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출근하게 되면 돌봄의 상당 부분을 학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단이 없어 더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11일 학부모들이 주를 이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불안감을 느낀 부모들이 위치 추적 앱에 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기사 등을 공유하며 “앱 이름은 뭐냐” “앱을 통해 아이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위치 추적 앱은 부모와 자녀 휴대폰에 같이 설치하고 위성항법장치(GPS)를 연결하면 부모의 휴대폰으로 자녀의 위치가 실시간 공유된다. 이번 사건으로 주변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해당 앱은 이날 기준 구글플레이에서만 누적 5천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학부모들은 정부의 안일한 정책이 문제를 키웠다고 분노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이 모(37)씨는 “학교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는 나라에서 관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사를 6개월만 휴직하게 한 교육청의 방침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앱을 통해서라도 아이 지키기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대두됐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현재 A씨의 사례처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교원이 복직 신청을 하면 반드시 복직시켜야 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 같은 조항 등에 대해 적절성을 따져 보겠다는 게 교육당국의 입장이다.
반면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감시망’이 촘촘해져 교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교사의 비상식적인 범죄 행위를 교육계 전체 문제로 확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육 현장에서 교사를 감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수원 특수교사 아동학대 피소 사례(현재 2심 진행 중)에서 알 수 있듯 ‘몰래 녹음’에 대한 판결이 교육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만큼, 녹음에 대한 학부모와 교원 간 갈등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하늘아 아름다운 별이 되렴>
.gif)
.jpg)
.jpg){kind=small}
.jpg)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