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규제 논란에 대해서
안재오(교육평론가)
대통령 선거 공약과 선행학습 규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 출제를 금지하는 '선행(先行)학습 금지' 공약을 내세웠다. 초·중·고교에서 학년별로 정해진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시험 문제 출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긴 학교나 학교장은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또 대학들이 논술 등 입시에서 고교 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새 정부는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인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이 법은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은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다. 따라서 '선행학습 금지'가 사교육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선 2013.1.7)
이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시민 단체가 지난 1년 동안 선행교육금지법을 꾸준히 주장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은 결과인 것 같다.
교육개혁 운동도 그 방향과 목적에서 꾸준히 변화해 오고 있다. 그 전에는 <학벌없는 세상>의 슬로건이 세력을 얻었었는데 이제는 좀 더 전문적이고 미세한 분야로 운동이 전개되는 것 같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단체는 사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사교육의 일부인 선행학습을 부정하고 이를 규제하는 일에 운동의 초점을 두고 있다. 하기야 어떤 면에서 이들의 전략은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선행학습 없는 사교육이란 앙꼬 없는 찐빵같이 맛을 상실한 물건이 될 것이다. 강남이나 목동 같은 사교육 특수 지역에서 선행학습을 안 한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러면 많은 학원들과 개인 과외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아무리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선행교육이 나쁘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이 법 제정을 반대하는 쪽도 동의한다. 다만 이를 법으로 제정해서 규제할 수 있겠느냐는 데서 이견이 있다. 선행교육 금지법 내용 중 시험 규제 부분은 학원 관계자들조차 반대하지 않는 것이니, 핵심은 ‘선행교육 프로그램 규제’ 부분일 것이다. 혹자는 자유경제 시장에서 어떻게 학원의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규제할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사교육 상품 모두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교육과 같은 ‘불량? 교육 상품만 규제하자는 얘기다. 기업의 ‘불량’ 식품 유통은 국가가 법으로 막는데, 아이들 정신을 좀먹는 ‘불량’ 교육 상품은 왜 규제할 수 없다는 말인가. (중앙일보 2012년 12월 29일)
여기서 문제는 선행교육을 불량 교육상품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한국에서 선행학습이 그렇게 득세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나타난 현상만 보고 이를 정죄하고 이를 법으로 금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교육 금지를 법으로 규제한다는 생각에는 동의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교육의 개념 규정과 대상을 확정하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고등학교 3학년에서 배워야 할 수학을 중학교 2학년에서 배운다면 이는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영어 같은 경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to 부정사 문법을 중 2학년에 배우도록 교육과정이 규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영어 학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to 부정사를 가르친다면 이는 불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또 더 나아가서 교육부에서 규정한 학년별 교과과정을 무시하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불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선행학습의 단점만을 보고 이를 법적으로 규제한다는 발상은 <법제화 만능주의>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2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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