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민주주의 논란 -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하여
안재오(교육평론가)
1. 민주주의 개념의 양의성(兩義性)
최근 어떤 학자는 한국사회를 과잉 민주주의의 덫에 걸려 있다고 걱정을 했다. 즉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과잉 민주화의 덫에 걸려 있다. ‘민주’의 의미를 왜곡하고, 이른바 민주적 가치를 절대적 가치로 그릇되게 치환했기 때문이다” 라고 세태를 비판하면서 그 사례로서 국회선진화법, 교육평준화 제도 그리고 교육감 직선제 등을 지시했다. 그의 표현을 더욱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권력의 지배 형태 내지는 정부 형태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는‘민주정(民主政)’이라고 해야 옳다. 민주주의로 하려면 피번역어가 ‘이즘(-ism)’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으며, 절차적 가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번역된 ‘민주주의’를 절대적 가치 또는 절대선(絶對善)으로 치환했기 때문에 개념적 혼선과 함께 여러 가지 폐해가 드러난다. (문화일보)
필자 역시 현재 상태가 과잉민주주의 혹은 과잉민주화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싶다. 그리고 김 교수의 말처럼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개념을 절대화하고 있다는데 십분 동의한다. 사회의 공통선에 대한 합의가 부족한 근ㆍ현대 사회에서는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그 개념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하다못해 북한과 같은 저질 국가도 인민민주주의라는 말로써 자신의 독재주의, 전체주의를 미화하고 있다. 내친 김에 말하면 북한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민주주의 명단에서 제거시켜야 한다.
그런데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런 과잉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 개념의 절대화라는 술어를 적용하고 싶은 주어를 근래에 논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사태에서 찾는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출마 공약이었다. 실은 이 개념은 처음부터 애매모호한 개념이었다. 여기서 민주화란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두 핵심은 자유와 평등 중이다. 자유와 평등은 크게 보아서 서로 반비례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 개념 자체의 양의성(兩義性)으로 인해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 인간 사회의 큰 구성 요소를 정치와 경제라고 할 때, 대략 정치는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고 경제는 자유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만민 평등의 정치가 바로 민주주의 정치이다. 그러나 만민평등의 민주정치가 경제마저 지배하려 든다면 이는 공산주의로 귀착이 된다. 자유와 평등의 이런 모순적인 결합 - 이를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불러도 된다 - 때문에 많은 오해와 혼동이 나타난다. 경제민주화 개념처럼 실은 경제평등화 개념도 민주화라는 간판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을 탄 동반성장이라는 사상도 그런 평등주의 즉 경제 주체간의 평등주의를 전제하고 있다.
2. 공정거래법 개정안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경제민주화 이념에 따라 여야가 합동으로 대기업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법안 이런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아직 논의 단계이긴 하지만 이 법 개정이 앞으로 한국 경제 정책의 기본적인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에 우리도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현재 경기의 물결이 거칠고 이로 인해서 가난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야 간 합의단계에 이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일부 개정법률안’에는 대기업 계열사 간에 부당 내부거래 의혹이 일 경우 입증책임을 기업이 지도록 돼 있다. 새로 개정되는 공정거래법 제11조 2항에는 ‘“복수관계인의 경제력 집중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행위”라 함은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관계인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회 등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것이 입증 조건에 관련한 부분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금지와 허용의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문화일보 4.15)
이 법 개정 활동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벌써 처음부터 위태로운 사고의 발상이 느껴진다. 우선 기업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원천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것이 정당한 경우는 몇 가지 조항을 달아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국회의원들의 근본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하여간 위의 법안은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은 국회와 다르다. 외부거래든 내부거래든 간에 그 선택의 여지를 기업에게 일임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기업을 몇 개로 쪼개든 혹은 반대로 합치든 간에 이 부분을 기업과 기업가의 고유한 자유의 영역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모기업이 자회사를 만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부 거래를 위한 것이다.
기업의 생존과 자본의 집중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론 K. Marx 같은 자본주의 경제 비판가들은 자본의 확대 및 집중을 자본의 악무한적 유통이니 노동 착취니 하고 욕할 수 있겠지만 작은 기업이마나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사업이 망하지 않고 운영되며 또 성장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솔직히 필자도 책도 몇 권 저술하고 또 학적으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기업 하나 키우기는 그런 이론적인 작업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그렇게 돈벌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기업의 생존과 발전은 곧 민중들의 생존과 국가의 번영의 초석이다. 기업은 백성들에게 생존을, 생명을 부여한다. 물론 일부 기업들은 분배를 정의롭게 하지 않고 소위 착취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봐야 한다. 우리처럼 작은 기업을 하는 삶들은 기업이 문자 그대로 생존이다. 그러니 큰 기업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기업가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이제는 좀 교정을 해야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5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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