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가치의 새로운 인식과
고졸 취업문화 확산 방안
여창엽 (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사)
1. 들어가면서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 고용과 구직 등이 국가적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일과 직업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생존의 문제와 연관되기에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와 노동력의 이상적인 조합은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국가적 일자리가 적절하게 주어질 때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의 직업선호도는 다양성ㆍ다변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적 일자리 또한 시대적ㆍ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에 구직과 고용의 균형을 맞추기는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60~70년대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직업교육은 산업에 필요한 기능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여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특성화 고등학교가 그동안 수많은 산업 인력을 양성, 공급하여 적재적소에 배치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발전에 기여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능력을 더욱 요구하고 있으며, 대량생산 체제가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 이동하면서 자동화ㆍ고급화 등의 영향으로 기능 인력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특성화 고등학교는 학생, 학부모, 산업체 등 교육 수요자들에게 외면당하고 그 가치가 폄하되어왔다.
이러한 현상은 직업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의 직업교육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3년 동안 기능을 연마하여 금융기관, 기업체, 공무원 등으로 취업을 하는 종국교육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재 특성화 고등학교는 보통 교육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직업인으로서의 기본 교양을 함양시키고, 학교별로 특성화된 전문교육을 통해 관련 직업 분야의 기초ㆍ전문 지식과 기술 및 태도를 습득시켜 선 취업 ㆍ후 진학의 직업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화 고등학교의 모습이 고졸 취업 문화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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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졸 취업의 걸림돌
현재 특성화고등학교는 산업계와 미래 직업세계의 동향을 살펴 체제개편을 완료하고 검토단계에 들어가 있다. 또한 단위학교의 상황에 맞게 특성화된 교육 소프트웨어를 개발ㆍ적용하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취업준비 시기의 교육여건을 체계화시켜서 우수한 기술 인력을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졸 취업률의 성장과 고졸 취업문화의 발전에는 걸림돌이 많다. 이는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사회의 전통적 학벌 지상주의이다. 조선시대에 사ㆍ농ㆍ공ㆍ상으로 직업을 서열화하고 계층 간 차별을 두었으며 학문을 중요시하는 사 계층의 양반사회가 부와 권력을 집중적으로 가지고 나머지 계층은 보잘 것 없는 신세로 대우하였다. 이에서 비롯된 문화가 지금까지 학벌지상주의라는 형태로 우리사회에 잔재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은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나 관리자들에게 절망의 벽처럼 타파하기 어려운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벌지상주의는 학력 인플레이션을 낳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국가공인 전문 학위 취득은 물론 각종 전문자격증을 소지하고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스펙을 쌓는 데에 고통스럽게 젊음을 허비하고 있다.
둘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욕구에 맞는 취업 일자리가 취약하다. 고졸 취업자들은 저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학벌주의로 인한 제한 등으로 인하여 이직하거나 때로는 취업을 포기하고 진학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고도성장의 경제 발전을 하면서 사무실이나 생산 현장의 자동화와 업무 개선을 꾸준히 추진하였고, 그 결과로 관련업무 자체가 줄어든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고졸자들은 단순 노동 생산직으로 내몰리고, 험하고 어려운 일을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고졸취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형성되어 고졸 취업자들은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 되고 이는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셋째,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학교 진로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진로가 적성과 흥미 등의 인적요소보다는 학력 수준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고등학교 단계의 직업교육이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많은 교사들은 본질적인 기술교육보다 근태상황, 성실성지도, 무기력함에 대한 지도 등의 기초교육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물론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것도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그런 차원의 기초교육이 아니라 말에게 물을 먹기기 위하여 억지로 물가까지 끌고 가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고졸취업 문화의 걸림돌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고졸 취업의 중소영세업체 고용, 낮은 임금 수준, 고졸취업자의 열악한 복지, 시간제 근무문제, 잦은 직장이동 등이 있다. 또한 이러한 고졸 취업문화의 걸림돌들이 단순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복잡하게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3. 고졸 취업문화 확산 방안
우수한 기술인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고졸취업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고졸청년 의무고용할당제와 모범기업 지원, 양질의 일자리 발굴, 취업 전 직업체험, 맞춤형 취업지원 프로그램 개발, 교육훈련 제공 등이 고졸취업문화 정착에 필요한 정책이다. 여기서는 거시적 관점에서 고졸취업문화 정착의 확산 방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고졸 취업자들이 직업의 귀천의식 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적성에 맞는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여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고졸 노동력이 가지는 신선한 가치를 존중해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학교진로 교육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여 취업하는 것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취업하는 것의 차이는 ‘대학 수학 기간’과 ‘기업체 근무 기간’의 차이일 뿐이며 기술과 노동력의 고유가치 차이가 아님을 우리 사회의 가치관으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능력 우선의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직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해야 이러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중시 사회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와 자동차를 고치는 엔지니어가 서로 존중되는 사회이다. 이것은 직업의식이 뚜렷해야만 가능하다. 목욕탕 때밀이를 무조건 천대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짧은 시간에 창업 자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미화원은 우리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고마운 직업이다. 건강한 미래 사회는 자동차 수리공, 가전제품 수리공, 슈퍼마켓 경영, 제빵제과점 주인, 중소기업의 사무원, 골프장 관리인, 애완동물 미용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등의 모든 직업들이 내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이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보람을 가지는 철학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여러 직업들이 다양하게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둘째, 고용기관인 산업체와 공공기관에서는 고졸 취업자에 대한 처우와 근로조건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산업체가 인사정책에서 대학 수학 기간을 개인의 기술능력보다 언제나 상위에 두고 있다면 고졸 취업자들은 현장에서 기술연마에 노력하기보다 대학진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업체에서는 고졸 인력 고용 창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졸 인력을 숙련 전문가로 키울 로드맵을 구축해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고졸 인력의 다양하고 참신한 재능을 발전시키도록 돕고 인재로 키워 기업의 브랜드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졸 취업자들의 처우, 근무여건, 인간관계, 복지문제 등에서 고졸인력 채용 기관들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산업체에게 고용 창출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해 따르게 해야 한다. 혁신적인 시스템 구축 없는 고졸 인력 채용 확대는 직장 안에서 또 다시 차별에 시달릴 학벌 중시 정서를 해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능력 중심 사회를 이룰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 인사정책을 고졸취업에 맞추어 채용, 선발, 승진, 교육 등에서 선도적으로 바꾼다면 민간업체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고졸취업의 장래는 매우 밝아지게 될 것이다. 학교와 취업 지원기관에서는 고졸 구직자에 대한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그들의 기술과 경력, 희망, 적성에 따라 지원 대상을 선별하여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취업 알선, 직업훈련, 직장체험, 일자리 제공 등 일련의 과정을 패키지화하여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종합적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셋째,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성화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직업교육 기관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진로지도를 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직업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함을 통해, 고졸 취업자들을 경시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도록 고졸 노동력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직업교육이 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 고졸취업문화가 성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에 필요한 창의성, 도전정신, 근면성, 도덕성 등과 같은 교육과 더불어 전문 기술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산업체 현장과 밀착된 교육과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덴마크 정부는 초등학교 8학년(한국의 중2)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장래 직업을 선택하도록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그리고 직업교육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모든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 1~2주일씩 관심 있는 직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는 장래의 직업 수요를 파악하고, 직업학교와 대학의 정원을 재조정하며, 의사부터 미용사ㆍ목수에 이르기까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공급하고 있다. 매년 각종 자격증 숫자를 조절한 덕분에 덴마크는 실업자를 최소화하였고, 세계에서 국민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청년실업자들이 무작정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업에만 몰리는 경향이 생겨나기도 하고 엄청난 시간적ㆍ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취득한 학위증이나 멀쩡한 자격증을 갖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최근 가수 직업 선호도가 급격하게 높아져서 가수지망생이 190만 젊은이에 이른다는 것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생애ㆍ진로의 로드맵에 대한 국가적 정책이 필요하며 그 정책의 하나가 마이스터고등학교라고 본다.
4. 마무리
우리나라 직업의 세계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세분화되어 있지만 그 중 2년제 이상 대졸 학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불과 27% 정도이며, 고졸 학력만으로 충분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업과 학력과 무관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일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반고 졸업생 중 81.5%, 특성화고 졸업생 중 71.1%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2011년 교과부 통계자료를 보면 전문대를 포함한 고등교육기관은 434개교나 되며 대학생이 37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개인의 요구와 사회의 일자리 사이의 균형을 잃고 미스매칭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졸 취업 문화가 확산되고 우수한 기술 인력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서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기다린다. 이를 위해서는 능력위주의 사회가 성숙되어 기술 인력의 노동 가치를 절대가치로 바라보는 사회적 가치규범이 형성되어야 한다. 능력 중심 사회를 이룰 성공 관건은 만연한 학벌중심 정서를 어떻게 타파하느냐 하는 것과 고졸자에 대한 멸시와 상대적인 차별대우 해소에 있다. 단지 고졸 인력 채용만으로 고질적인 학벌중심 정서가 하루아침에 바뀌고 능력중심 사회가 실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현실에서 고졸 인력 고용 창출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능력중심 사회의 초석을 이룰 총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식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학력보다 능력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고졸취업자들이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교양과 지적 수준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열등의식을 떨쳐버리고 그들의 노동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 모두가 고졸 출신의 노동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여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는 문화를 추구해야 하며, 이것이 한국경제의 발전과 경쟁력을 위한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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