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졸업생 우수한 진학성과, “명문고 발돋움”
연일 불행한 학교, 불행한 아이들의 소식이 뉴스를 장식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교육여론 조사에서, 국민들은 대한민국 공교육에 대해 50점에도 못 미치는 불량 성적표를 주었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공교육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지만 소중한 희망들이 곳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혁신학교, 삼각산고등학교가 바로 그렇다.
올해 첫 졸업생, 우수한 성과 거둬
2011년 개교해 이제 4년에 접어든 신생학교, 삼각산고등학교는 전통 있는 명문학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미래에 전통 있는 명문학교가 되기 위한 역사의 한가운데 서있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형혁신학교로 개교한 이 학교는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우수학생을 유치하지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최상위 학교 합격생을 다수 배출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는 주변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선사했다. 실상 우수학생보다는 평범한, 아니 학업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아이들이 많이 입학했던 삼각산고는 이번 대학진학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입학 당시 성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특히 수시전형에서 놀라울 정도로 선전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김정안 혁신부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모든 수업과 활동에 깔려 있는 참여, 합의, 자발성․자율성 존중 정신이 입학사정관제나 수시전형에서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소통하게 하는 수업방식이, 학업에 흥미를 잃었던 아이들을 다시 교실로 불러왔던 거죠. 실제 우리 아이들의 성적을 입학부터 졸업까지 그려보면 대부분이 확연한 상승곡선을 그려요. 그것이 이번에 꽃 핀 거죠.”라며 이번 성과의 이유를 설명했다.
선생님들의 열정, 아이들의 마음을 녹여
삼각산고의 지난 3년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 처음은 가시밭길이었다. 첫해 입학한 아이들은 일부의 우수학생과 다수의 학업부진학생으로 이루어졌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협력은커녕 방해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열정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점점 녹여갔다.
이재억 교감선생님은 그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 학생들과 만났을 때, 사실 조금은 실망도 했고 고민도 했습니다. 첫 신입생들은 우수한 학생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우리학교로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학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학교의 소문은 나쁘게 돌아오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학교에 부임해 온 선생님들의 상당수는 경력이 적은 신규교사 분들이었습니다. 너무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선생님들은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하고 싶으신 것도 많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오히려 상처로 되돌려주는 아이들조차 웃으며 보듬어 안는 모습이 점차 저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은 경력만으로 속단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
사실 이런 선생님들의 열정은 학교의 지원이 없고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아무리 열정적인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업무에 치이고, 아이들에게 상처 받다보면, 점점 열정이 식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삼각산고등학교는 훌륭한 교장, 교감 선생님이 여러 선생님들의 열정을 뒷받침해 왔다. 선생님들은 “정인순 교장선생님과 이재억 교감선생님이 언제나 선생님들을 존중하고 소통하셨기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안 선생님은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소통이 몸에 배어 있어요. 모든 문제는 서로 논의해서 해결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소통의 문화에 교장, 교감선생님도 흔쾌히 참여하고 계세요. 교장, 교감선생님이 선생님들과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시니, 선생님들끼리의 소통과 협력은 너무도 훌륭하게 이루어지게 되는거죠.”라며 학교의 소통문화를 자랑했다.
학생들의 능동적 문제 해결 능력 배양
이런 소통의 문화는 학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다. 삼각산고가 자랑하는 통합교과수업, 토론수업, 프로젝트수업, 협력수업도 이러한 소통의 문화를 빼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토론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삼각산고의 가장 큰 성과였다.
김정안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소통해서 해결책을 찾아내요. 문제가 생기면 TF(TaskForce)팀이 생기고 딱딱 역할분담이 바로 되요. 이런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 제 몫은 하겠구나하고 감탄하죠.
이번 졸업식도 아이들이 졸업준비 위원회를 꾸려서 치렀어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2학년 학생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 참여자 위주로 운영해요. 축제도 자발적으로 모인 축제준비위원회가 끊임없이 논의해서 기획하고 진행하죠.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의 기획, 집행도 모두 우리 아이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어요.”라며 삼각산고 학생들의 능동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자랑했다.
학생들은 프로젝트 수업과 토론 수업 그리고 축제, 수학여행, 졸업식 등 다양한 학생 주도 행사들을 통해, 늘 협력하고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해 온 것이다.
고등학교지만 대학교 같은
이번에 치러진 삼각산고의 첫 졸업식은 학생들이 주도한 졸업준비위원회를 통해 더욱 특별한 졸업식이 되었다. 이번 졸업식에는 상장 수여와 내빈 축사가 과감하게 생략되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학생들의 졸업장 수여로 채워졌다.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졸업장을 직접 전달했다. 따뜻한 말과 포옹 그리고 졸업장을 전달한 뒤에도 아쉬움에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과 아이들, 너무도 따뜻한 광경이었다.
아이들도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3학년 교사들에게 간지상, 지드래곤상, 성장상, 자상, 고맙상 등 교사의 특성을 살린 재치있는 상장과 롤링페이퍼를 전달해 교사들을 감동시켰다.
이재억 교감선생님은 “처음에 그 상처에 움츠렸던 아이들이, 점점 밝아지고 협동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더니 지금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네요. 지금 이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의 작품 같지 않습니까?”라며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올해 졸업생인 김준수 학생에게 삼각산고를 한마디로 표현해달라 하자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지만 대학 같은, 하지만 개인주의적인 대학이 아닌 정이 넘치는 대학 같은 학교”라며 삼각산고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소통 속에 싹 튼 신뢰
정인순 교장선생님은 학교의 성과에 대해 한사코 선생님들의 공으로 돌렸다.
“어떤 조직이나 공감과 소통이 중요하죠. 특히나 학교 같은 조직에서는 더더욱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학교는 그런 부분이 너무 잘 돼있어요. 이미 소통이 문화가 되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선생님들끼리 소통하고 협의해서 문제를 해결해요. 학생들도 그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해 토의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어요. 저는 그저 이런 학교의 문화를 뒤에서 지원하는 게 전부예요. 아마 전국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교장이 저일 거예요.”
이에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이 선생님들을 존중해주시고, 언제나 소통하고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학교가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며 다시 공을 교장선생님에게 돌렸다.
“아무리 열정이 충만한 선생님이라도 계속 상처받고 스트레스에 억눌리다 보면 그 열정이 식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우리학교는 교장선생님이 언제나 선생님들을 존중해주시고 소통에 주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 열정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인간관계란 소통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정인순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우리 아이들은 이미 너무도 훌륭하게 자랐어요. 이번 졸업식에서도 너무 잘했고요. 그래도 제가 한마디 하자면, 인간관계를 강조 하고 싶어요. 살아가면서 너무도 중요한 게 인간관계잖아요. 엔지니어링이라는 기술적인 직업조차 성공의 열쇠는 인간관계라고 하죠. 기술의 역할은 15%에 불과하고 인간관계의 역할이 85%나 된다고 해요.
그리고 사실 인간관계란 소통이잖아요. 소통을 통해 오해를 없애고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면 그게 바른 인간관계죠. 우리학교가 지금껏 추구해온 바로 그것이죠.
저는 우리 학생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를 나가서도 인간관계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졸업식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학생들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책을 꼭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생들이 항상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관계를 잘 맺고, 모두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박범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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